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떠날 때, 여객선 대신 비행기를 타는 이유는 명확하다. 비싸지만, 빠르기 때문이다. 비행기로 2시간 안팎이면 닿는 일본이나 중국을 배로 가려면 대개 15시간이 넘게 걸린다. 비행기가 아무리 답답하고 선상 갑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비교우위의 논리에서 배는 비행기에 밀린다.
하지만 여행지에 도착해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빠르다고 해서 모든 도시 간 이동을 비행기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현지인들과 뒤섞여 자동차나 기차, 배를 탈 수밖에 없다.
여객 항로가 개설된 곳을 살펴보면 모두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대부분은 버스나 기차로는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데, 배를 타면 금방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군산에서 서해 건너편 중국의 산둥반도를 차로 간다고 생각해보면 된다. 자동차로는 '∩'자 형태로 에둘러야 하지만, 배는 바다 위를 직선으로 간다. 따라서 배가 빠르고, 비용도 적게 든다.
도로와 철로가 직선으로 개설돼 있음에도, 배가 싼 경우도 있다. 일본의 아오모리-하코다테 구간이 그러한 예다. 경비 절감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는 오래 걸리고, 항구까지 오가는 여정이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여객선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 JR 패스보다 저렴하다, 규슈-간사이
개별여행자가 많은 일본에서는 한꺼번에 여러 지역을 둘러보기가 쉽지 않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삿포로 등 주요 도시를 거점으로 열차 패스가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의 철도회사인 JR에서는 규슈, 간사이, 도호쿠, 홋카이도 등 지역별로 열차 패스를 판매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 전역을 돌아보려면 JR 패스를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JR 패스를 소지하면 일본 열도에서 신칸센을 비롯해 거의 모든 열차에 자유롭게 탑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JR 패스는 사용 기간에 따라 7일권이 2만8천300엔, 14일권이 4만5천100엔이다.
그런데 규슈와 오사카, 교토, 고베가 있는 간사이 지역만 여행하려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 이유는 규슈와 간사이 지방을 잇는 선박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여러 선사가 두 지역을 배로 연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타큐슈-오사카 구간을 운항하는 한큐페리와 벳푸-오사카를 왕복하는 간사이키센(關西汽船)이 대표적이다.
한큐페리는 매일 1∼2차례씩 기타큐슈의 신모지(新門司) 항에서 오사카, 고베로 배를 띄운다. 요금은 객실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데 가장 저렴한 2등 다인실이 4천500엔, 4~8명이 함께 사용하는 객실은 6천500엔이다.
간사이키센은 한큐페리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2등 다인실이 6천 엔, 2등 침대실이 7천500엔인데 운행 시간이 한큐페리보다 조금 짧다.
규슈와 간사이를 오가는 페리를 이용하면 두 가지 측면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우선 밤에 출발해 다음날 오전에 도착하는 일정이어서 하룻밤 숙박비를 아낄 수 있다.
그리고 JR 패스보다 교통비도 적게 든다. 예를들어 배를 타지 않고 규슈 북부에서 3일, 간사이 지방에서 3일을 여행하는 일정이라면 열차를 1주일 동안 이용할 수 있는 JR 패스를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규슈와 간사이 지방을 배로 이동한다면 JR 북규슈 패스 3일권, 간사이 스루 패스 3일권, 한큐페리 탑승권 등 1만6천500엔만 지불하면 된다. 10만 원 이상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현재 규슈와 간사이를 오가는 선박의 탑승권은 여행박사에서 판매하고 있다.
◆ 아오모리와 홋카이도를 잇는 뱃길
혼슈의 북단에 위치한 아오모리와 홋카이도는 겨울에 특히 아름답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이 내려 대지를 하얗게 뒤덮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이면 스키를 타고 설경을 감상하려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아오모리와 홋카이도 사이에는 길이 53.9㎞의 세이칸(靑函) 해저 터널이 뚫려 있다. 1988년 개통된 이 터널에는 철로가 놓여 있어서 기차가 두 섬을 오간다. 아오모리에서 출발해 하코다테로 향하는 열차의 소요 시간은 약 1시간 50분, 운임은 4천830엔이다. 터널 안에는 기차역이 있어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세이칸 해저 터널이 만들어지기 전, 아오모리에서 하코다테로 가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만 했다. 지금도 두 도시를 왕복하는 배편이 많은데, 기차보다 저렴하고 자동차를 선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오모리-하코다테 구간에서는 도난지도샤(道南自動車)페리가 여객선 '에산' 호를 운항하고 있다. 열차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2등석 요금이 1천620엔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한항공을 이용해 아오모리와 하코다테를 함께 여행하려는 사람은 에산 호를 선택해야 한다.
한편 히가시니혼페리에서는 아오모리와 홋카이도의 무로란(室蘭)을 연결하는 페리를 운행하고 있다. 무로란은 삿포로와 하코다테의 중간쯤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무로란에서 아오모리로 가는 배는 밤에 출항하므로 숙박비 부담을 덜 수 있다.
◆ 선박 여행의 천국, 일본
한국에서 선박은 주로 대도시와 섬을 잇는다. 섬에 사는 주민들이 뭍으로 나오기 위한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섬나라인 일본에서는 선박이 대도시와 대도시, 큰 섬과 큰 섬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오사카에서 출항하는 배들의 목적지만 살펴봐도 알아챌 수 있다. 현재 오사카에서는 기타큐슈와 벳푸뿐만 아니라 시코쿠, 나고야, 일본 최고의 휴양지인 오키나와, 규슈 남부의 미야자키까지 뱃길이 열려 있다. 도쿄-오키나와, 도쿄-기타큐슈 구간에도 여객선이 다니고 있다.
따라서 일본 전역을 훑으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선박을 이용해 여러 지역을 효과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 일본의 자세한 선박 교통 정보는 '일본의 여객선(日本 旅客船, www.jships.or.jp)'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선박을 검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배에서 바라본 일본의 풍경 100선', 각종 이벤트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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